글연성2016. 5. 5. 17:01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가볍게만 느껴졌다. 한적했던 집에서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반겨준다, 라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 누군가를, 가끔은 제가 먼저 기다리는 것 또한 나쁘지 않으리라.

 

*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일이 들어왔다, 싶어 재미라도 볼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나름 들떠있었더니 이게 웬걸.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먼지뭉치만 굴러다니는 이 낡은 건물 꼭대기 층에 올라, 몇 시간이나 말 한마디 제대로 외쳐보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제게 주어진 목표를 위해 잠복에 잠복을 거듭했다. 차라리 무전기라도 달랑달랑 들고 왔으면 시끄럽게 떠드는 잡담이라도 엿들을 수 있었을지도. 뒤늦은 후회와 함께 마른 입안에 커피가 한 잔 당길 때 즈음 장착된 망원경의 시야 안으로 목표물이 포착되어 매끄럽게 잘 빠진 제 라이플을 손끝으로 길게 쓰다듬고는 총신을 움직였다.

 

어서 와요.”

 

제가 있는 건물의 높이에서부터, 제 목표물인 반 즘 벗겨져 꼴도 보기 싫은 머리를 한 남자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여차하면 들킬 수 있었기에 별 것도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이 눅눅해지는 기분에 이마를 가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언제쯤 쏴야 할까, 지금, 아니면 좀 이따가? 한참을 고민하면서 총구를 조준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당기려던 와중 망원경을 사이에 두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뿔싸. 잇새로 불평어린 소리를 내는 사이, 남자의 품에서 작은 소총이 꺼내져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쪽으로 겨눠졌다. 이래서 아저씨들 상대하기가 힘이 든 거야, 추가수당을 달라고 해볼까. 제 보스, 닉스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욕을 했으면 했지, . 그렇게 잡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예의도 없고 무례하게도 소음기하나 장착되지 않은 소총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정말 명사수가 아니고서야 제 머리통을 맞출 수는 없을 걸, 하고 생각했는데 탄알은 제 라이플의 몸통을 가볍게 스치고는 더 위로 뻗어갔다. 망할 새끼.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 저답지 않게 망설일 것도 없이 소음기로 더 길어진 총구의 끝에서 풋- 하고 뻗어나간 탄알이 반 대머리의 머리를 통과해 바닥으로 파고들어, 그 위에 대자로 뻗는 남자를, 바보상자 안의 오늘은 날씨가 맑습니다.’ 하는 감흥 하나 없는 뉴스를 보듯 무심하게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제니퍼.”

 

피곤에 처진 눈꼬리가 더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총알이 머리통을 피해간 걸 좋았지만 기어코 제가 아끼기 그지없던 라이플의 총신에 흠집을 내다니. 미안해, 하고 다시 한 번 라이플을 달래 듯 쓰다듬으면서 사과를 하고는 약간의 온기가 미적지근하게 남은, 흠집 난 총신을 혀를 길게 내어 핥았다. 혀끝에서부터 느껴지는 그다지 좋지는 못한 맛에 미간을 찡그리고는 허기와 갈증에 바짝 마른 제 입술을 혀로 겨우내 축인 뒤에 익숙하게나마 총기를 분해해 한쪽에 열어 둔 채 방치한 첼로 케이스 안으로 분리한 부품을 맞춰 넣었고 나서야 케이스를 닫아 잠금장치를 걸어 어깨에 짊어졌다. 무거워. 오늘따라 더 무겁게만 느껴져 이 전에 다쳤던 손목이 시큰거리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돌려 창문도 없는 뻥 뚫린 사각구멍을 내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누워 가는 게 보였다. 늦으면 걱정할지도 모르니까. 빈 손목에 시계라도 걸쳐진 양 한 번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허름한 건물의 계단을 내려갔다. 속이 쓰려왔다. 잠복을 하느라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없었기에 유난히도 쓰렸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건물을 빠져나와 석양을 측면으로 등져 거리를 걸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마냥. 이미 저 멀리에서는 경찰차라던가, 이거저거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렸다. 그러니까 공개적인 곳은 싫다니까.

일상을 즐기듯 거리를 걷다가 마주친 상가들의 장신구들을 스쳐지나가면서 시선으로 훑고는 그 길을 나오자마자 제 발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조만간 옷이나 하나 장만할까, 기왕이면 신발도 같이.

 

같이 가자고 해볼까.”

 

과도하고 친절하거나, 주변 환경에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분명한 그였다. 그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분명 따라와서는 이게 낫겠다, 저게 낫겠다, 하며 코디네이터를 자청할 것이 눈앞에 선해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오렌지색처럼 물들었던 하늘이 어두운 파란빛을 지나 저어 너머에서 작고 흐린 달이 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서서 주머니 안의 제 열쇠를 꺼내들어 열쇠구멍에서 깨작였다. 피곤해서인지, 수전증이라도 온 건지, 계속해서 엇나가는 열쇠 끝에 신경질적으로 쑤시고 나서야 달칵, 하고 반갑게 문이 열렸다.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인사를 건넸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실내 슬리퍼를 신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안 왔나. 어깨에 짊어졌던 첼로 케이스를 현관 옆에 내려두고는 거실의 소파로 향하며 투 버튼의 먹색 자켓을 벗어 팔걸이 위로 던져뒀다. 피곤해, 하고 시큰한 눈을 감으며 보타이대신 맨 끈 타이를 풀기위해 손을 올렸다가 현관에서의 인기척에 몸을 돌렸다.



+수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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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는 1~10 순서대로 읽어주시면 됩니다.

(길이가 긴 편일 수 있습니다. BMG은 동영상으로 첨부)

 

 

 

BMG /  Star Queen - Flaming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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